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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산 개발의 짙은 그늘 <중>마을이 사라진다(2005.9.9)

   
부산 기장군 당사리에서 대파 농사를 짓고 있는 이동송 당사리개발대책위원장. 그는 동부산관광단지에 자신의 집과 논밭이 모두 편입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배성재기자 passion@kookje.co.kr

 

134세대가 모여 사는 부산 기장군 기장읍 당사리. 지리적으로는 송정해수욕장과 불과 500m 떨어진 '도심속 농촌'. 하지만 평화로운 정경과는 달리 마을 입구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집집마다 '초전박살' '결사반대'라고 적힌 깃발이 나부꼈다. '동부산관광개발 빛좋은 개살구' '자자손손 가꾸어온 터전을 사수하자'고 적힌 플래카드가 마을 전체를 휘감고 있다.


▲이주하는 순간 실업자 신세=당사리가 '전쟁터'로 변한 것은 동부산관광단지 사업이 본격화하면서부터. 마을 전체 15만여평이 어뮤즈먼트파크(amusement park) 부지로 편입됐다. 주민들은 모두 이주해야 한다. 이동송(65) 당사리개발대책위원장은 "동부산관광단지에 대해 일언반구의 설명도 없다가, 이제와서 고향을 떠나라고 하는데 분통이 안 터지겠나"고 목청을 높였다.

조심스레 '보상금을 많이 받으려는 의도가 아니냐'고 물었다. 당사리 근처 부동산중개인으로부터 '토지 수용 보상금 때문에 데모를 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김찬섭(48) 당사리 이장의 안색이 확 변했다. "평생 농사만 짓던 내가 돈 몇푼 더 받는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땅밖에 모르는 내가 장사를 할 거야 사업을 할 거야. 이곳을 떠나는 순간 난 실업자야. 돈이 문제가 아니라고."

▲소작인은 보상도 없어=당사리 134세대 가운데 74세대만 집을 갖고 있을 뿐 나머지 60세대는 세입자다. 300평 이상의 땅을 가진 지주는 30세대에 불과하다. 손바닥만한 땅이 있거나, 그마저도 없는 나머지 100세대는 남의 전답을 빌려 소작일을 한다. 이곳에 소작농이 많은 것은 농토의 대부분을 외지인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이장은 "오래전부터 외지인들이 땅을 사들였어. 아무것도 모르는 농민들은 시가보다 조금 더 받고 팔아버렸지. 그리고 모두 소작농이 된 게야"라며 한탄했다.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A(63)씨는 30년전부터 소작을 하고 있다. 그가 농사짓는 5000평 가운데 자신의 땅은 605평뿐이다. 그는 "내 땅을 모두 보상받아도 아파트 한 채 값도 안돼. 나이가 많아 경비일도 못하지, 다섯 식구는 어디 가서 살아야 하나"고 반문했다.

그는 30여년전부터 삼성미술문화재단이 소유한 전답 750평에서 소작을 하고 있다. 그의 부친은 1968년 9월 당사리와 인접한 기장군 석산리 야산 1만2000여평을 평당 200원씩 받고 삼성에 팔았다. 당시 A씨는 아버지가 판 땅 1만2000평을 관리해주는 대가로 삼성으로부터 750평을 소작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그는 "소작농은 보상도 못받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동암·공수마을도 개발반대 목소리=부산시는 마을 전체가 동부산관광단지에 편입된 주민들을 위해 기장읍 시랑리에 집단 이주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하지만 대상 주민들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보상비를 받아 봤자 평당 100만원을 호가하는 이주단지내 부지를 매입해서 집 한 채 지으면 끝이라는 것이다.

동부산관광단지 개발을 반대하는 곳은 당사리 뿐만이 아니다. 토지가 일부 편입되는 동암과 공수마을 주민들도 마을 입구에 '주민이 원하지 않는 관광개발 결사반대' 플래카드를 붙여놓았다.

기장군 Y부동산 사장은 "요즘은 농민들의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차라리 농사짓는 게 더 현명하다고 믿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1부 광역이슈팀

신수건 이노성 배성재기자